가치투자자:
타인들은 찾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판단력을 지녔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회를 위해서 쓰일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
유통 대기업 임원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정선용 님. 임원으로 퇴직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거라는 세간의 소문은 소문일 뿐, 누구보다 솔직한 퇴사의 심정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어떤 이해도 자기 경험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당사자로서 직접 겪은 시간을 들려주신 이유는 누구도 쉽게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길 바라는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완전변태라는 흥미로운 비유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을 맞이하는 과정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만남부터 전 과정이 통찰로 번뜩인 인터뷰였습니다.
취직을 통해 사회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면 퇴직은 사회적 죽음이라고 볼 수 있죠.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과정이 훨씬 더 나았을 것 같아요. 퇴임식을 하는 것보다는 그냥 통보 하고, 스스로 수습하고, 정을 떼고 나오는 과정. 물론 본인은 힘들죠. 대부분 마찬가지일 텐데 통지를 받으면 첫날은 그저 막막하고 둘째 날부터 온갖 섭섭함이 밀려오면서 화가 나기 시작해요. 셋째 날에야 겨우 수습해서 받아들이죠. 그렇게 다시 살아가는 준비를 시작하는 게 3일째부터 같아요.
그때도 세상이 낯선 건 마찬가지예요. 당연했던 월급과 직책, 매일 아침 머릿속에 가득했던 회사 일이 모두 사라져 버리니까요. 퇴직을 전후로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느낌, 그 순간 사회적 죽임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선시대에 귀양을 보내듯 외딴섬으로 유배를 간 거죠. 사실 내가 사회적으로 사용 연한이 다 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좌절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처럼 유배당한 그곳에서 나를 기록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면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이 퇴직이 준 가장 큰 선물이었어요.
퇴직 통보를 받고 3일째 되는 날부터 하루 한 편씩 매일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렸는데, 그렇게 쓴 52편의 글이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 라는 책으로 출판됐고 1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죠.
그런데 남들보다 고민이 짧았고 일찍 한 발을 내디뎠어도 마음속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는 않았어요. 저는 지금도 꿈을 꿔요. 대학 입시를 다시 치르는 꿈. 다시 군대에 가는 꿈, 그리고 퇴직했는데 다시 회사에 나오라고 하는 꿈. 누구에게든 퇴직은 큰 고통이에요. 취직을 통해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가지고 사회와 연결되었는데 그 시간이 끝나는 거니까요.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사별, 이혼, 퇴직 순으로 큰 심리적 상처를 받는다고 하잖아요.
수용의 차이는 있겠죠. 대안을 가진 사람들이나 스스로 깨고 나온 사람들은 비교적 괜찮을 것 같고 타의에 의해 나온 사람들은 고통이 더 심할 것 같아요. 저는 다행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없었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아마 더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러니 소득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자산이 있거나 뉴업(New-UP업(業))을 준비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요.”
퇴직,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으로 만들다.
“회사에서 MBTI 검사를 했더니 ENFJ 선도자 유형으로 나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라 성격 검사를 하면 늘 예술가형이 나왔는데 나한테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 유형이 나오더라고요. 선도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의욕을 불어넣고 이끌어가는 카리스마 강한 사람들의 모습이거든요. 재미있는 건 임원 출신들은 대부분 선도자 또는 활동가형이라고 해요. 그 이유가 리더십이 필요한 사회적 역할이 부여돼 그렇게 바뀐다고 하고요.
예전과 다르게 사람들을 이끌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최적화되었구나, 깨달았지만 이게 퇴직하면 쓸모가 없는 능력이기도 해요. 퇴직하고는 리더의 역할보다는 혼자서 스스로 책임져 나가는 역할이 훨씬 더 많지 않겠어요. 이 거추장스러운 옷을 어떻게 벗느냐 하는 것도 일종의 숙제 같아요.”
- 어떤 분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엔 퇴직 준비를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업무와 병행할 시간도 없고 업무에 충실하지 않은 모습은 밖으로 보이는 법이니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하라고요.
“그분 말이 맞아요. 저는 팀장부터는 일주일에 7일을 근무했어요. 따로 자기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죠. 다만 제 직무를 잘하기 위해서는 글쓰기와 읽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이해를 얻었고, 기자들이 취재해 쓴 사회의 일기라고 생각한 신문 읽기를 거르지 않았어요. 그리고 기획서를 굉장히 잘 썼어요. 글을 쓰는 건 말로써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일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 글을 쓰는 데도 보탬이 돼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과 연관돼 자기 안에 있는 장점을 찾고 개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의외로 자신도 몰랐던 재능들이 자기 안에 많이 숨어 있거든요. 제 경우엔 퇴직하고 나서 모든 게 멈춰버린 순간, 말과 글이 오랫동안 잊었던 나의 참모습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답답함을 풀고 나의 강점을 살리자는 마음으로 글을 썼지만, 이 발견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으로 이어졌죠. 다시 생각하면 그런 재능이 업무를 통해 더 강화된 부분도 있다고 봐요. 직장이라는 조직(시스템) 안에서 움직일 때는 잘 안 보이지만 퇴직하고는 눈에 보이기 시작하죠. 그래서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말씀드려요. 잊혔던 나를 찾는 과정은 원래의 나를 재발견하는 것이죠.”
- ‘40대에 사업가로 나갈 준비를 하라’고 책에 쓰셨는데, 지금 하신 말씀과 연결이 될까요?
“그 부분은 ‘직원으로 시작해라, 그러나 직원으로 살지 마라.’ 말해주고 싶었어요. 대한민국의 평균 퇴직연령이 49.3세에요. 직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이는 오십이 마지노선이죠. 그래서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사업가로 나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당부였지요.
회사 있을 때 가장 좋은 건 월급, 명함, 일이에요. 이 세 가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들은 잘 몰라요. 회사에서 퇴직하고 나서야 알게 되죠. 그런데 준비 없이 나오면 두려움과 조급증으로 판단이 흐려져요. 40대에 미리 퇴직을 준비하는 게 필요한 시대라는 걸 아시면 좋겠어요.
월급과 명함, 일이 가진 힘을 깨닫도록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해드릴게요.
먼저 월급은 고정적으로 나오는 돈이에요. 매달 지급된다는 건 스스로 지출 관리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죠. 대부분은 벌면 쓰기에 바쁘지만 고정 소득으로의 월급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산을 만들죠. 자산은 돈의 뭉침인데 자본주의에서 돈은 뭉쳐 있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해요. 즉, 작은 돈보다 큰돈이 훨씬 힘이 세죠. 1억과 100억은 100배 차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투자가 되면 천 배, 만 배까지도 차이가 날 수 있어요.
두 번째 ‘명함’. 명함은 사회적 신용이에요. 사람들은 명함을 사회적 지위의 표현으로만 여기는 데 사회적 신용이라는 사실도 인식하면 좋겠어요. 인적 네트워크를 비롯한 사회적 신용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면 명함을 통해서 훨씬 큰 것을 얻을 수 있어요.
세 번째는 ‘일’인데 저는 일이 돈을 받고 배우는 가장 훌륭한 학습이라고 생각해요. 일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와 이 사회에서 흐름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내재적인 힘도 키울 수 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과 명함, 일의 중요함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40대에 나와서도 충분히 잘 해내겠죠. 나이가 들수록 선택지가 좁아지고 회복력이 떨어지는데 40대에는 선택지가 많아요. 아까 말한 월급과 명함과 일을 통해 자기 안에 힘을 키워 놓으세요. 회복력과 선택지가 많은 40대 나와서 적합한 창업을 통해서 사업가로 거듭나길 바라서 이 이야기를 드리는 거예요.”
완전변태, 나비의 날개로 비상을 꿈꾼다.
- 정선용님의 또 다른 책, 『아들아, 돈 공부는 인생 공부였다』에서 ‘인생은 타이밍이 아니라 타임이다.’ 하셨어요. ‘시간의 임계점’도 인상에 남은 단어였는데 오늘 대화 중 말씀하신 ‘완전변태’라는 개념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나비가 알에서 애벌레로,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완전변태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도 완전변태 하는 유형이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저 또한 그런 탈바꿈의 과정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나비처럼 세 번의 변태 과정을 거쳤죠.
첫 번째, 알로 지낸 청소년기가 있어요. 형의 죽음이 있고 3년쯤 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집에 있었어요.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억지로 잠들면 다음 날 오후에 일어나고. 할 일이 없어 책만 읽었는데 그때 데미안을 읽고는 감명을 받아 헤르만 헤세의 책은 다 읽었어요. 감수성 예민하던 그 시기, 어둠 속에서 섭취했던 책으로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가 됐지요.
애벌레 시기는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에 다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25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는데 알의 시기 읽었던 책들 덕분에 문해력이 있어 다시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 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애벌레 시기에는 책을 통해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닌, 지혜라고 할까요, 경험이라고 할까요? 내 몸으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부분에 집중했어요. 그러니까 일을 열심히 했던 것도 공부라고 생각한 거예요. 직장은 내가 돈 받고 다니는 학교다.
그렇게 배움을 계속 쌓아가던 애벌레시기가 있었고, 그때 갉아 먹었던 지혜의 나뭇잎들이 장년기 번데기로 보내는 시간을 버티게 해줬어요. 퇴직으로 움츠러들었던 번데기 시기에는 몸을 부딪치며 쌓아왔던 경험들이 나를 지켜준 힘이었고 글을 쓰는 토대였어요. 퇴직 후 50일 동안 고치 안에서 나비로 변태할 힘을 만들어 낸 거죠.
지금 저는 나비가 되게끔 준비하고 있어요. 작가로서 기본 토대들을 쌓아 노년의 삶은 나비처럼 훨훨 날고 싶어요. 인생은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변화되는 게 아닐까. 어떤 목표지점이 있는 게 인생이 아니라, 과정이 인생이라는 느낌이 지금 드네요.”
Q. 퇴직을 견디고 계신 분들께 해주고 싶은 말씀이 있으실까요?
생각보다 바닥이 깊지 않다. 낭떠러지 끝에 매달렸다 생각하면 안 떨어지려고 애를 쓰지만 손을 놓아보세요. 저는 스스로 손을 놓는 걸 리셋 버튼이라고 이야기해요. 리셋은 기존의 방식을 지우고 새롭게 출발하는 시작 버튼이에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리셋 버튼을 두려워하는건 그 순간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고 짐작하기 때문이거든요. 차라리 바닥으로 떨어지세요. 생각보다 바닥이 깊지 않고, 그 바닥에서 새로 시작할 수 있어요.
종결 버튼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 버튼이라는 걸 아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먼저 경험했으니까 알죠. 여러분은 모두 직장에서 우수한 일을 했던 분들이에요. 다시 시작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자질을 가지고 있어요. 바닥에서 다시 시작할 마음이 있다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이겨내려면 스스로 안으로 단단해지세요.
정선용 님의 책에서, 부의 불평등이 힘의 불균형으로 이어지는 현실과 대한민국 사회가 이 불균형을 너무 방치하는 것에 대한 고민,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구조와 영향력을 살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언제, 어떤, 크레바스(위험)를 만나더라도 각자의 자산을 준비하면 이겨낼 수 있겠지요. 책에 나오듯 배고픔보다 배아픔이 치명적인 현대사회에서, 정선용 님이 이야기한 준비는 금융 자산만을 뜻하진 않을 것입니다. 자기 이해와 자아존중, 내적 단단함, 삶에 대한 철학... 책을 통해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4050 모두가 함께 들어볼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넓고 깊다고 느꼈습니다. 정선용 님의 통찰은 글쓰기로 길러진 힘일까 궁금해하니 책을 쓰면 전문가가 된다고 답 해주셨습니다.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되새김질하고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습관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요. 반복되는 퇴고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글을 만들어내듯 반복해서 사고하는 습관은 생각을 명료하고 뾰족하게 만들어주나 봅니다.
나비가 변화의 끝이 아닐 거란 제 짐작처럼 정선용님은 현재 식품 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교수와 사업가로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계시다 하셨습니다. 작가이자 교수이자 사업가로 새로운 날개짓을 준비하는 정선용 님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인터뷰 및 정리 : 화담,하다 권주영
가치투자자:
타인들은 찾지 못하는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는 판단력을 지녔으며 새로운 아이디어가 사회를 위해서 쓰일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
유통 대기업 임원에서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정선용 님. 임원으로 퇴직하면 아무 걱정이 없을 거라는 세간의 소문은 소문일 뿐, 누구보다 솔직한 퇴사의 심정을 이야기해 주셨습니다. 어떤 이해도 자기 경험을 넘어설 수는 없습니다. 당사자로서 직접 겪은 시간을 들려주신 이유는 누구도 쉽게 좌절하지 말고 자신의 길을 찾아가길 바라는 응원이라고 생각합니다.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와 번데기를 거쳐 나비가 되는 완전변태라는 흥미로운 비유를 통해,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타이밍이 아니라 시간이 쌓여 임계점을 넘기는 순간을 맞이하는 과정이라는 말씀도 해주셨습니다. 만남부터 전 과정이 통찰로 번뜩인 인터뷰였습니다.
취직을 통해 사회적으로 새롭게 태어났다면 퇴직은 사회적 죽음이라고 볼 수 있죠.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과정이 훨씬 더 나았을 것 같아요. 퇴임식을 하는 것보다는 그냥 통보 하고, 스스로 수습하고, 정을 떼고 나오는 과정. 물론 본인은 힘들죠. 대부분 마찬가지일 텐데 통지를 받으면 첫날은 그저 막막하고 둘째 날부터 온갖 섭섭함이 밀려오면서 화가 나기 시작해요. 셋째 날에야 겨우 수습해서 받아들이죠. 그렇게 다시 살아가는 준비를 시작하는 게 3일째부터 같아요.
그때도 세상이 낯선 건 마찬가지예요. 당연했던 월급과 직책, 매일 아침 머릿속에 가득했던 회사 일이 모두 사라져 버리니까요. 퇴직을 전후로 세상이 완전히 달라진 느낌, 그 순간 사회적 죽임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선시대에 귀양을 보내듯 외딴섬으로 유배를 간 거죠. 사실 내가 사회적으로 사용 연한이 다 된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에 좌절감이 많이 들었어요. 그런데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처럼 유배당한 그곳에서 나를 기록하고, 할 수 있는 일들을 고민하면서 나를 새롭게 발견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그것이 퇴직이 준 가장 큰 선물이었어요.
퇴직 통보를 받고 3일째 되는 날부터 하루 한 편씩 매일 블로그에 글을 써서 올렸는데, 그렇게 쓴 52편의 글이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 라는 책으로 출판됐고 10만 부가 팔리는 베스트셀러가 됐죠.
그런데 남들보다 고민이 짧았고 일찍 한 발을 내디뎠어도 마음속 상처가 아직 치유되지는 않았어요. 저는 지금도 꿈을 꿔요. 대학 입시를 다시 치르는 꿈. 다시 군대에 가는 꿈, 그리고 퇴직했는데 다시 회사에 나오라고 하는 꿈. 누구에게든 퇴직은 큰 고통이에요. 취직을 통해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가지고 사회와 연결되었는데 그 시간이 끝나는 거니까요. 어느 심리학자의 말처럼 사별, 이혼, 퇴직 순으로 큰 심리적 상처를 받는다고 하잖아요.
수용의 차이는 있겠죠. 대안을 가진 사람들이나 스스로 깨고 나온 사람들은 비교적 괜찮을 것 같고 타의에 의해 나온 사람들은 고통이 더 심할 것 같아요. 저는 다행히 경제적인 부분에서 어려움이 없었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아마 더 고통스러울 거예요. 그러니 소득을 대신할 수 있는 다른 자산이 있거나 뉴업(New-UP업(業))을 준비할 수 있는 자질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지요.”
퇴직, 나를 다시 발견하는 시간으로 만들다.
“회사에서 MBTI 검사를 했더니 ENFJ 선도자 유형으로 나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이라 성격 검사를 하면 늘 예술가형이 나왔는데 나한테 전혀 없었다고 생각한 유형이 나오더라고요. 선도자는 다른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도록 의욕을 불어넣고 이끌어가는 카리스마 강한 사람들의 모습이거든요. 재미있는 건 임원 출신들은 대부분 선도자 또는 활동가형이라고 해요. 그 이유가 리더십이 필요한 사회적 역할이 부여돼 그렇게 바뀐다고 하고요.
예전과 다르게 사람들을 이끌고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데 최적화되었구나, 깨달았지만 이게 퇴직하면 쓸모가 없는 능력이기도 해요. 퇴직하고는 리더의 역할보다는 혼자서 스스로 책임져 나가는 역할이 훨씬 더 많지 않겠어요. 이 거추장스러운 옷을 어떻게 벗느냐 하는 것도 일종의 숙제 같아요.”
- 어떤 분이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엔 퇴직 준비를 하지 말라고 하더군요. 업무와 병행할 시간도 없고 업무에 충실하지 않은 모습은 밖으로 보이는 법이니 잘할 수 있는 일을 더 열심히 하라고요.
“그분 말이 맞아요. 저는 팀장부터는 일주일에 7일을 근무했어요. 따로 자기 개발할 수 있는 시간이 없었죠. 다만 제 직무를 잘하기 위해서는 글쓰기와 읽기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 독서를 통해 인문학적 이해를 얻었고, 기자들이 취재해 쓴 사회의 일기라고 생각한 신문 읽기를 거르지 않았어요. 그리고 기획서를 굉장히 잘 썼어요. 글을 쓰는 건 말로써 누군가를 설득하는 일이잖아요. 그런 것들이 일에 큰 도움이 되었는데 지금 글을 쓰는 데도 보탬이 돼요.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일과 연관돼 자기 안에 있는 장점을 찾고 개발할 수 있다는 거예요. 의외로 자신도 몰랐던 재능들이 자기 안에 많이 숨어 있거든요. 제 경우엔 퇴직하고 나서 모든 게 멈춰버린 순간, 말과 글이 오랫동안 잊었던 나의 참모습이란 것을 알게 됐어요. 처음에는 답답함을 풀고 나의 강점을 살리자는 마음으로 글을 썼지만, 이 발견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는 것으로 이어졌죠. 다시 생각하면 그런 재능이 업무를 통해 더 강화된 부분도 있다고 봐요. 직장이라는 조직(시스템) 안에서 움직일 때는 잘 안 보이지만 퇴직하고는 눈에 보이기 시작하죠. 그래서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고 말씀드려요. 잊혔던 나를 찾는 과정은 원래의 나를 재발견하는 것이죠.”
- ‘40대에 사업가로 나갈 준비를 하라’고 책에 쓰셨는데, 지금 하신 말씀과 연결이 될까요?
“그 부분은 ‘직원으로 시작해라, 그러나 직원으로 살지 마라.’ 말해주고 싶었어요. 대한민국의 평균 퇴직연령이 49.3세에요. 직원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나이는 오십이 마지노선이죠. 그래서 직장을 다니고 있을 때 사업가로 나아갈 수 있는 준비를 하라는 당부였지요.
회사 있을 때 가장 좋은 건 월급, 명함, 일이에요. 이 세 가지가 얼마나 소중한지 사람들은 잘 몰라요. 회사에서 퇴직하고 나서야 알게 되죠. 그런데 준비 없이 나오면 두려움과 조급증으로 판단이 흐려져요. 40대에 미리 퇴직을 준비하는 게 필요한 시대라는 걸 아시면 좋겠어요.
월급과 명함, 일이 가진 힘을 깨닫도록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을 해드릴게요.
먼저 월급은 고정적으로 나오는 돈이에요. 매달 지급된다는 건 스스로 지출 관리와 계획을 세울 수 있다는 의미죠. 대부분은 벌면 쓰기에 바쁘지만 고정 소득으로의 월급의 가치를 아는 사람은 자산을 만들죠. 자산은 돈의 뭉침인데 자본주의에서 돈은 뭉쳐 있을 때 가장 큰 힘을 발휘해요. 즉, 작은 돈보다 큰돈이 훨씬 힘이 세죠. 1억과 100억은 100배 차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해요. 투자가 되면 천 배, 만 배까지도 차이가 날 수 있어요.
두 번째 ‘명함’. 명함은 사회적 신용이에요. 사람들은 명함을 사회적 지위의 표현으로만 여기는 데 사회적 신용이라는 사실도 인식하면 좋겠어요. 인적 네트워크를 비롯한 사회적 신용을 활용하는 방법을 배우면 명함을 통해서 훨씬 큰 것을 얻을 수 있어요.
세 번째는 ‘일’인데 저는 일이 돈을 받고 배우는 가장 훌륭한 학습이라고 생각해요. 일의 성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사회가 돌아가는 구조와 이 사회에서 흐름을 주도하는 것에 대해 배울 수 있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는 내재적인 힘도 키울 수 있어요.
직장을 다니면서 월급과 명함, 일의 중요함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40대에 나와서도 충분히 잘 해내겠죠. 나이가 들수록 선택지가 좁아지고 회복력이 떨어지는데 40대에는 선택지가 많아요. 아까 말한 월급과 명함과 일을 통해 자기 안에 힘을 키워 놓으세요. 회복력과 선택지가 많은 40대 나와서 적합한 창업을 통해서 사업가로 거듭나길 바라서 이 이야기를 드리는 거예요.”
완전변태, 나비의 날개로 비상을 꿈꾼다.
- 정선용님의 또 다른 책, 『아들아, 돈 공부는 인생 공부였다』에서 ‘인생은 타이밍이 아니라 타임이다.’ 하셨어요. ‘시간의 임계점’도 인상에 남은 단어였는데 오늘 대화 중 말씀하신 ‘완전변태’라는 개념과 연결되는 것 같습니다.
“나비가 알에서 애벌레로, 번데기에서 성충으로 완전변태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도 완전변태 하는 유형이 있겠다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저 또한 그런 탈바꿈의 과정이 있었던 것 같거든요. 나비처럼 세 번의 변태 과정을 거쳤죠.
첫 번째, 알로 지낸 청소년기가 있어요. 형의 죽음이 있고 3년쯤 후 고등학교를 그만두고 혼자 집에 있었어요. 새벽까지 깨어 있다가 억지로 잠들면 다음 날 오후에 일어나고. 할 일이 없어 책만 읽었는데 그때 데미안을 읽고는 감명을 받아 헤르만 헤세의 책은 다 읽었어요. 감수성 예민하던 그 시기, 어둠 속에서 섭취했던 책으로 알에서 깨어나 애벌레가 됐지요.
애벌레 시기는 대학에 들어가고 직장에 다니던 시기라고 할 수 있어요. 25살에 늦깎이 대학생이 됐는데 알의 시기 읽었던 책들 덕분에 문해력이 있어 다시 공부해서 대학에 가는 게 가능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애벌레 시기에는 책을 통해 머리로 이해하는 지식이 아닌, 지혜라고 할까요, 경험이라고 할까요? 내 몸으로, 마음으로 이해하는 부분에 집중했어요. 그러니까 일을 열심히 했던 것도 공부라고 생각한 거예요. 직장은 내가 돈 받고 다니는 학교다.
그렇게 배움을 계속 쌓아가던 애벌레시기가 있었고, 그때 갉아 먹었던 지혜의 나뭇잎들이 장년기 번데기로 보내는 시간을 버티게 해줬어요. 퇴직으로 움츠러들었던 번데기 시기에는 몸을 부딪치며 쌓아왔던 경험들이 나를 지켜준 힘이었고 글을 쓰는 토대였어요. 퇴직 후 50일 동안 고치 안에서 나비로 변태할 힘을 만들어 낸 거죠.
지금 저는 나비가 되게끔 준비하고 있어요. 작가로서 기본 토대들을 쌓아 노년의 삶은 나비처럼 훨훨 날고 싶어요. 인생은 과정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것으로 변화되는 게 아닐까. 어떤 목표지점이 있는 게 인생이 아니라, 과정이 인생이라는 느낌이 지금 드네요.”
정선용 님의 책에서, 부의 불평등이 힘의 불균형으로 이어지는 현실과 대한민국 사회가 이 불균형을 너무 방치하는 것에 대한 고민, 사람들이 자본주의의 구조와 영향력을 살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언제, 어떤, 크레바스(위험)를 만나더라도 각자의 자산을 준비하면 이겨낼 수 있겠지요. 책에 나오듯 배고픔보다 배아픔이 치명적인 현대사회에서, 정선용 님이 이야기한 준비는 금융 자산만을 뜻하진 않을 것입니다. 자기 이해와 자아존중, 내적 단단함, 삶에 대한 철학... 책을 통해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는 4050 모두가 함께 들어볼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대화를 하면서 사람에 대한 애정을 가지신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사회를 보는 시각이 넓고 깊다고 느꼈습니다. 정선용 님의 통찰은 글쓰기로 길러진 힘일까 궁금해하니 책을 쓰면 전문가가 된다고 답 해주셨습니다. 글을 쓰고 퇴고하는 과정에서 생각을 되새김질하고 과거와 현재를 보면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습관이 만들어진 것 같다고요. 반복되는 퇴고를 통해 군더더기 없는 글을 만들어내듯 반복해서 사고하는 습관은 생각을 명료하고 뾰족하게 만들어주나 봅니다.
나비가 변화의 끝이 아닐 거란 제 짐작처럼 정선용님은 현재 식품 전공 박사과정을 밟고 있으며교수와 사업가로의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계시다 하셨습니다. 작가이자 교수이자 사업가로 새로운 날개짓을 준비하는 정선용 님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인터뷰 및 정리 : 화담,하다 권주영